설찬범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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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을 통해 본 <사랑을 카피하다> (한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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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을 통해 본 <사랑을 카피하다> (한미라)


... 플라톤의 형상 이론에서 이미지는 항상 원본 실재의 복사물로 간주되거나 객관적 실재의 주관적 가상으로 치부되었다. 이에 반해 벤야민은 아우라가 사라진 기술복제시대에는 원본과 복제, 본질과 현상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보드리야르는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를 원본 없는 가상물이면서 오히려 원본보다 더 원본인 양 행세하는, 허구적 기기호로서의 시뮬라르크로 보았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의 소비문화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상징적 교환의 불가능성을 통해 사유의 불확실성을 논한 구조주의자 그리고 시뮬라크르로 현대사회를 이론화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을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일반적인 의미의 흉내나 모방과는 다른 것으로, 흉내나 모방이 원본 대상을 근거로 하는 전통적인 재현 체계 속의 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라면 시뮬라크르는 흉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이며,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된다. 시뮬라크르는 감추기와 구분되는데, 감추기가 무언가를 가졌으면서 갖지 않은 체하는 것이라면, 시뮬라크르하기는 갖지 않은 것을 가진 체하는 것이다. 시뮬라시옹은 참과 거짓, 실재와 상상세계(가상) 사이의 다름 자체를 위협한다. 그러기에 보드리야르에게 있어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사실성과도 무관하며 자기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이다". 시뮬라크르는 "더 이상 실재와 교환되지 않으며 어느 곳에 지시도 테두리도 없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그 자체로 교환되는 것"이다...


...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 하기'라는 뜻을 지닌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로, 이미지가 원본을 가정하지 않고, 스스로 실체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하이퍼리얼(파생실재)을 산출하는 작업니다. 여기에서 실재는 전통적인 개념으로서의 현실 혹은 사실을 말하고 하이퍼리얼은 시뮬라시옹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실재로서, 사실성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현실을 말한다. 재현이 기호화 실재의 등가원칙에서 출발했다면, 시뮬라크르는 실재에 대한 기호의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시의 죽음으로서의 기호로부터 출발한다. 재현이 시뮬라시옹을 그릇된 재현으로 해석하고 이를 흡수한다면, 시뮬라시옹은 재현의 축조 자체를 시뮬라크르로 만들어낸다... 


... 재현은 기본적으로 실재와 이미지의 이분법적 분류를 가정한다. 이러한 재현체계 속 이미지는 원래의 실재를 반영한다고 간주된다. 따라서 가장 충실하게 원래 실재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가장 훌륭한 재현 이미지가 도니다. 시뮬라시옹은 실재와 이미지의 이분법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단계로, 실재와 이미지의 경계가 불분명한 단계다. 이러한 "시뮬라시옹 속에서 재현적 상상세계는 사라지게 된다." 이미지가 모방할 혹은 재현할 실재가 없고 이미지 자체가 실재인 세계에서 상상세계는 존재를 상실한다. 존재와 외양을 나누던, 실재와 이미지를 나누던 기준은 사라지고, 지시대상(실재) 자체가 소멸되어버린다...


...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시뮬라시옹에는 세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 첫 번째 층위는 현실의 복제라는 사실이 확연한 경우로, 소설이나 그림, 지도처럼 현시로가 그 재현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경우, 두 번째 층위는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복제가 잘 이루어진 경우로,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극도로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 결국은 지도가 제국의 전 영토를 덮어버리는, 지도와 현실이 더 이상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지도가 현실만큼이나 현실 같에 되는 경우, 세 번째 층위는 조금도 현실세계에 기초하지 않은 채 스스로 현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그것이다. 세 번째 층위의 시뮬라시옹은 하이퍼리얼 혹은 원본이 없거나 리얼리티를 상실한 현실의 모델을 창출한다. 이 층위에서는 모델이 현실을 선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현실과 재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재현 양쪽에서 모두 분리되는 것이며, 현실과 재현 중 어떤 것이 먼저인지도 상관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층위의 시뮬라시옹에서 여전히 현실이 존재하고 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따라 시뮬라시옹의 성공 여부가 성립된다면, 세 번째 층위의 시뮬라시옹에서는 더 이상 현실 비슷한 것조차 가지지 않으며 실재 원본이 없는 세계를 창출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층위에서는 '진정한' 상태를 파악하려는 명목으로 시뮬라시옹된 징후들 너머를 관찰하려는 시도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징후들은 언제나 이미 주체의 수행적 진실인 것으로 간주된다...


... 보드리야르는 한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재를 하이퍼리얼로 넘어가게 하는 시뮬라시옹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1971년 라우드 가의 사람들을 7개월간 촬영, 300시간의 생방송으로 방영하며 철저한 진본성 속에서 실재의, 경험의, 발굴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연출자는 '라우드가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거기 없었던 듯이 살았다'고 언급하는데, 이것은 역설적이지만 참도 거짓도 아닌, 그러나 유토피아적인 공식이 된다. 즉 '우리(연출자)가 거기 없었던 듯이'는 '당신(시청자)이 거기 있었던 듯이'와 등가를 이루게 되는 역설적인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관객과 장면 사이의 거리를 축소하고 붕괴시키는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과도한 투명성의 전율, 실재의 전율 그리고 하이퍼리얼의 미학을 발생시킨다. 실재를 하이퍼리얼로 넘어가게 하는 시뮬라시옹의 즐거움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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